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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니가 좋아! 순두부보다 더(feat. 브레송)

브레송과 순두부

Editor 서정준 2022.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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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서정준

2022.07.29

순두부를 좋아한다. 사실 안 좋아하는 음식이 없지만, 그중에도 부드러운 식감을 베이스로, 여러 재료를 더해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는 순두부는 꽤 즐기는 음식이다. 뚝배기 그릇에 넘칠 듯 나오는 순두부찌개는 맛 이상의 든든함도 제공한다.


하지만 그보다 좋아하는 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다. 물론 그는 로버트 카파 등과 함께 사진을 처음 알게 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가이며, 동시에 사진을 배워가는 사람들을 거쳐 가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자연스러운 스냅 스타일은 아름다움을 넘어 놀라움까지 주게 되지만, 그것을 따라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도 난 그의 그 유명한 ‘발레리나’ 사진(전시장 입구에 가면 볼 수 있는 사진이기도 하다. 실제 제목은 ‘생 라자르 역 뒤에서’다.)에 오랜 시간 매료돼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들였다. 지금은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시간이 더 길지만, 날씨 좋은 날 카메라 하나 들고 길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지하철에서 앉아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기도 했다.




20대를 지나 30대가 되고, 점점 그의 사진이 아닌 이름만 기억에 남게 됐을 때 운명처럼 전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결정적 순간’(이하 ‘브레송 사진전’)을 마주했다. 다른 일로 예술의전당에 들렀다가 생긴 시간, 그 발걸음이 내겐 오랜만의 ‘결정적 순간'이었다.


오는 10월 2일까지 전시되는 브레송 사진전은 그가 1952년 출간한 사진집 ‘결정적 순간’의 발행 7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다. ‘결정적 순간’에는 완벽한 프레이밍, 연출한 것 이상의 훌륭한 미장센 등 그가 찍어낸 예술적 성취도 있지만, 동시에 전 세계를 돌며 촬영한 시대의 순간, 현장의 기록, 치열한 삶도 담겨 있다. 인도, 중국 등을 다니며 촬영한 사진이 특히 그러하다.


그래서 전시 자체도 브레송의 예술적인 사진을 잔뜩 걸어놓고 그의 위대함을 나열하는 것보다는 사진집 자체에 대한 콘텐츠가 주를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편집장 테리아드, 출판사 대표 딕 사인먼, 표지를 그린 앙리 마티스의 이야기 등, 사진집 발행에 관련된 편지나 메모, 혹은 그가 남긴 사진에 대한 글 등 여러 흔적이 번역돼 사진과 함께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전시장 곳곳에 써진 글귀가 특히 좋았다. 갈수록 인스턴트화되는 사진과 관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아직도 인간적인 사진을 담고 싶은 본인의 소망이 투영됐다고나 할까.




‘포토존’이 전시의 주인공이 되는 SNS 시대에 레드와 블루, 블랙과 화이트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심플한 전시장은 사진들에 어울리는 클래식한 느낌을 준다. 관객들도 누군가는 꽤나 긴 시간 사진 앞에 머물렀고, 누군가는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당장 어제 촬영한 사진도 피드 ‘뒷 편’으로 가면 보이지 않는 지금, 대부분 사람이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다니게 됐으니 각자가 생각하는 사진이 궁금했다.





전시를 보고 나와 그냥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자리를 옮겼다. 예술의전당 맞은편에 위치한 백년옥에서 순두부찌개를 시켰다. 이곳에서 식사할 땐 주로 취재를 하러 가기 전, 혹은 바쁜 취재를 마친 후 늦은 식사 자리가 대부분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백년옥의 순두부찌개는 가격이 만 원대를 넘어버렸지만, 맛은 그대로였다.


순식간에 비워버린 한 그릇 인증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지나간 순간을 되새김질하기 좋다는 의미다. 백년옥이 담아낸 내 추억의 순간이 또 하나 늘었다. 특히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를 본 다음이라 그런지, 감회가 남달랐다. 다음에도 전시를 보고 나오면 순두부를 먹으리라, 다짐하며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에 대해 다시 생각에 빠졌다.


사진=서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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