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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의 속사정

팥이냐 슈크림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Editor 이현정 2020.11.27

색상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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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현정

2020.11.27

추워졌다. 겨울이 바짝 다가온 걸 알려주듯 사람들 옷차림도 두꺼워졌다. 스산한 일교차는 반갑지 않아도, 길을 가다 보면 미소를 주는 먹을거리도 등장했다. 주황색 비닐로 대강 덮어둔 포장마차 안에서 나는 고소한 냄새. 바야흐로 붕어빵이 제철 물고기란다.


날이 추워지니 슬금슬금 붕어빵이 보인다.





붕어빵은 어쩌다 붕어빵이 되었을까?


대부분의 음식 이름 앞부분은, 보통 속 재료가 되기도 한다. 가령 단팥빵, 소시지 빵, 크림빵처럼 속에 뭐가 들어갔는지 당당하게도 쓰였다. 빵에 생선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만 붙이기에는 영국에 청어 파이라는 음식도 존재한다. 그런데도 붕어빵은 겉모습에서 제 이름을 따왔다. 유명한 속설로는 일본 간식인 타이야끼에서 따왔기 때문에 물고기 모양이 되었다고 한다. 아시아에서 물고기가 상징하는 뜻이 부귀, 지혜 등등 좋은 의미를 지녔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왜 하필 많고 많은 물고기 중에서도 붕어였을까. 가끔 황금잉어빵이라고 칭하는 곳도 볼 수 있지만 대부분 붕어빵이라고 부른다. 잉어보다는 붕어가 더 친숙한 민물고기라서 그랬던 걸까.


하긴 만약 연어나 광어, 가자미, 혹은 조기였다면 지금처럼 귀엽고 동글동글한 인상을 주진 못했을 것이다. 금붕어 빵이라고 불렀다면 예쁜 대신 먹어선 안 될 느낌이고 고래 빵이라고 한다면, 큰 대신 비싼 디저트가 되었으리라. 아마 한 손만 한 크기에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한국의 민물고기 같은 길거리 빵이라 붕어빵이 되었나 보다.





팥은 겨울의 검은 설탕.

나는 팥을 좋아한다. 붕어빵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팥을 좋아할 것이다. 팥이라 하면 자고로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고소한 단맛의 대명사처럼 따라왔다. 여름엔 팥빙수, 겨울에는 팥이 들어간 붕어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지 않는가. 확실히, 팥은 실패할 수 없는 맛이다. 마가린이나 식용유에 바삭바삭하게 구워낸 반죽, 그 안을 가르면 몽글몽글하게 으깬 팥고물이 서로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궁합에 뽀얀 입김 가득 팥 풍미가 감돌아 혀끝을 따스하게 데운다. 기분 좋아지는 단맛 하나로 우울했던 귀갓길도 아늑해질 정도다.


하지만 팥만 이야기하자면, 붕어빵의 속 알맹이는 단조롭기 그지없다. 이제는 팥과 어깨를 견주는 또 다른 맛, 바로 슈크림 맛이 있다.








흑과 백에서 백을 맡는 달콤함.

십수 년 전, 붕어빵을 사러 갔을 때 떡하니 쓰여있는 '슈크림 세 개 이천 원'을 보고는 정말 놀랐다. 붕어빵에 슈크림 맛도 있다니. 신종 붕어빵의 몸값은 팥보다 비쌌다. 팥이 다섯 마리 이천 원이라면 슈크림은 세 마리 이천 원. 그럼에도 홀린 듯이 팥 대신 집어 들었다. 신기하니까. 그 맛은 생소하면서도 어딘가 익숙했다. 빵집마다 반드시 있는 슈크림 빵 속 커스터드 크림. 달걀, 설탕, 바닐라의 향기. 갖가지 희고 노란빛을 섞어 만든 크림은 연유 같은 맛이 났다. 그 뒤로 나는 겨울마다 붕어빵 포차를 보면 어김없이 슈크림 맛을 사게 되었다.


슈크림 맛은 오리지널 ‘정통파’인 팥 선호 인들에게는 배척되는 이국의 맛이다. 이국적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일상적인 맛과 향이다. 지하철을 지나칠 때면 코끝을 자극하는 델리만쥬의 향기, 빙수에 휘리릭 뿌리는 연유의 달콤함, 지친 얼굴로 힘없이 주문한 라떼 속 바닐라시럽. 이미 팥과 함께 매대에 나란히 놓이기 시작한 슈크림맛은 엄연히 붕어빵의 두 번째 속사정이 되었다.


사진 찍는다고 하시니 아저씨가 예쁜 아이들로만 골랐다고 하셨다.



데굴데굴 앞뒤로 나란히 구워지는 붕어빵을 보며 문득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팥과 슈크림 둘 중 어느 게 더 붕어빵의 속으로 인기가 많을까.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흑과 백은 마치 장기 말처럼 아웅다웅할 것 같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얌전한 얼굴로 누워있는 붕어빵은 오늘도 무거운 속과 다르게 태평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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