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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힐링을 지켜줘! 혼술을 책임지는 알콜레인저

내 돈으로 내가 추천하는 캔맥주 TOP 5

Editor 이현정 2020.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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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현정

2020.12.28


"잘 지내? 코로나 끝나면 밥 한번 먹자, 치맥하러 가자."


좋아하던 술자리가 뜸해졌다. 친구들과 치맥 한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이게 다 코로나19 때문이다. 방에 틀어박히는 것조차 지긋지긋한 요즘, 휴대폰에 남은 건 기약 없는 안부 인사다.


여름, 가을이 지나 어느덧 겨울. 외로운 것조차 지치는 연말에 홀로 지새울 나를 위해 맥주를 와르르 쓸어 담았다. 가끔은 일 때문에, 어느 날은 사랑 때문에 외로운 순간들. 나만을 위해, 나를 지켜줄 다섯 명의 용감하고 친절한 전사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캡틴 핑크 '에델바이스 피치'



오스트리아 대표 맥주 에델바이스 출신 복숭아향 맥주로, 패키지부터 부드러운 새먼핑크다. 할인 행사할 때 무심결에 구매한 게 첫 인연이었다. 보통 맥주에 과일이 들어간다고 하면 자극적일 정도로 달달한 맛을 상상하게 되지만, 의외로 깔끔하고 상큼한 맥주다. 지갑이 풍족하다면 통조림 복숭아를 한두 조각 잘라 넣어 먹어도 좋다.



아이언 옐로우 '타이거 라들러 레몬'




누구나 그런 날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우울해서 맥주 한 모금 하고 싶지만, 술 마시면 금방 피곤해질 것 같은 컨디션 나쁜 날. 타이거 라들러는 일이 잘 안 풀릴 때마다 편의점에 달려가서 반드시 집는 맥주다. 라들러는 맥주인 라거를 과일주스나 탄산음료 등과 섞은 가벼운 맥주를 말한다.


독일에서 유래된 술이지만, 이 녀석은 싱가폴산이다. 더운 나라에서 와서 그런 걸까. 상쾌한 단맛이 기분 좋게 혀를 위로하고, 레몬 향이 텁텁한 홉향을 가려줘서 산뜻하고 청량하기까지 하다. 팝콘과 맥주를 양손에 쥐고 넷플릭스나 왓챠를 켜두고 홀짝이면, 그날 우울한 감정도 어느새 가물가물해진다. 도수는 연약해도 강철같은 위로를 주는 맥주다.



파워 그린 '서머스비'




어릴 때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기에, 본능적으로 눈에 좋은 색을 좇았던 것일까. 어릴 적부터 나는 녹색을 일방적으로 좋아했다. 옷도 녹색, 가방도 녹색, 심지어 좋아하는 술에도 녹색이 들어갔다. 생명의 강인함을 느끼게 하는 푸르른 녹색처럼 패키지에도 나무가 그려진 서머스비다. 서머스비는 유럽에서 사이다로 유명하다. 사이다, 하면 대개 칠성 사이다를 떠올리겠지만, 사이다는 사과 에일(Ale)을 가리키는 단어다.


맛은 두말할 것도 없이 환상적이다. 한 모금 입에 머금을 때 첫맛은 풋사과의 싱그럽고 새콤한 단맛, 끝맛은 농익은 사과의 풍미가 훅 들어온다. 사과의 생기가 그대로 담긴, 사과 그 자체다. 서머스비를 먹을 때 종종 아몬드 초콜릿을 안주로 곁들어 먹는다. 달달한 술에 초콜릿이 웬 말이냐고 하겠지만, 상큼한 술이다 보니 초콜릿이 잘 어울린다. 사과 풍미가 더 강조되는 기분도 든다. 물론 그냥 마시는 것도 맛있다. 사과를 한 입 크게 베어 문 것처럼 강렬한 사과 맛은 근사한 안주가 딱히 필요 없을 정도다.



서머 코발트 '블루문'




흰 파도와 오렌지빛 볕 사이를 정처 없이 걷다 보면 그 끝자락에 작은 펍(PUB)이 보인다. 바닷바람이 스치는 사이드 테이블에 앉아 재즈에 똑딱거리는 메트로놈을 바라보며 주문한 병맥주 한 모금을 음미한다.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그런 여름의 한 조각. 블루문을 마실 때면 문득 이런 여름이 생각나곤 한다.


몇 년에 한 번 볼까말까한 귀한 파란달을 닮았다는 맥주. 인디밴드의 앨범 수록곡 제목 같은 맥주는 기십 종류가 넘는 밀맥주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좋아한다. 오렌지 껍질 향이 난다는데 확실히 일반 밀맥주와 다른 향미가 있다. 무겁지 않고 산뜻하고 개운한 블루문은 기름진 고기랑 먹으면 더더욱 어울린다. 이를테면 치킨, 치킨, 치킨이다. 블루문 한 캔 들고 뉴욕이 배경인 로맨스 영화를 보면서 가지 못한 여름 미국 여행을 떠올려본다. 아, 여행 가고 싶다. 언젠가는 가겠지. 홀짝홀짝.


아리따운 퍼플 '구미호'




구미호의 구슬을 표현한 것처럼 아리따운 패키지에 눈길이 갔다. 정직하게 쓰인 구미호라는 이름에 눈길 두 번, 앞뒤로 뒤집어 쓰인 설명을 읽고 보니, '레몬향이 은은하게 담긴 맥주'란 말에 눈길 세 번. 카브루라는 맥주 회사에서 나온 술이란다. 수입맥주에 익숙한 눈인지라 아직은 생소한 브랜드였으나, 단순히 화려한 색에 홀린 것처럼 과감하게 시도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에 아리라는 구미호 캐릭터가 나온다. '아리땁다'는 말에서 따온 이름답게 한국 구미호를 콘셉트로 잡았단다. 함부로 손댈 수 없는 강렬한 자태만큼이나 매력적인 이 캐릭터는 전 세계적으로도 인기란다. 소싯적 <전설의 고향> 좀 봤다 하는 사람이라면 익숙할 영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구미호라는 이름을 넣었을까. 결과적으로 시도는 성공이다. 개운하고 깨끗하다.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풍미가 혀를 보들보들 휘어잡는다. 매혹적인 맛에 한 모금씩 마시고 나니 이미 캔이 비었다. 어느덧 좋아하는 맥주 열 손가락에 들어가는 최애 라인에 당당하게 섰다.


유독 기나긴 겨울이다. 그래도 봄은 다시 온다. 언젠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다시 즐겁게 모일 날을 기다리자. 서로를 위해서 나는 오늘도 고독하게 힐링의 한 모금을 마셔본다.




사진=김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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