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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판 소비뇽 블랑, 마셔본 적 있나요?

충북 영동 ‘시나브로 와이너리’ 인터뷰

Editor 김보미 202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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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김보미

2022.09.14

향기로운 꽃 내음, 싱그러운 포도와 열대과일의 향미가 은은히 감도는 화이트 와인. 프랑스에서 물 건너온 와인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판 소비뇽 블랑’이라고 불리는 ‘청수’로 양조한 와인 이야기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청수를 이용해 와인을 빚기 시작한 곳이자, 국내 1호 소믈리에 가족이 운영하는 양조장, 시나브로 와이너리로 떠나 본다.


시나브로 와이너리 이근용 대표.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금강 줄기가 유유히 흘러 ‘깊은 내(深川)’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에 시나브로 와이너리가 있다. 포도 농장인 ‘불휘농장’과 와이너리를 함께 운영하는 이근용 대표는 반평생을 엔지니어로 살다 여유가 있는 삶을 찾아 귀농했다. 영동에서 포도를 기르며 우연히 만들어 본 와인이 호평을 받으며, 기계를 다루던 실력만큼 양조에도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년에 딱 한 번만 만들 수 있다는 점, 인내심을 갖고 숙성의 과정을 진득하게 기다려야 한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와인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때마침 영동군이 와인 특구로 지정되면서 와인 농가들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이것에 힘입어 와이너리를 열기로 결심했다.


“가족과 함께 일하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출퇴근이 없고, 공과 사 구분이 없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할 수 있죠. 항상 와이너리에 대해 생각하며 일할 수 있다는 점은 좋지만, 쉴 틈이 없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서로의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하지만 가족이기에 금세 마음을 풀고 웃게 됩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가족이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나브로 와이너리는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KISA)로부터 소믈리에 자격증을 획득했다. 이근용 대표는 포도 재배와 양조를 중심으로 와이너리 운영 전반을 관리 감독하고 있으며, 아내인 이성옥 대표는 와이너리 방문객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 운영과 판매 활동에 주력한다. 아들 이병욱 씨는 SNS 운영 및 홍보, 며느리 박영광 씨는 마케팅과 재고관리 등을 담당한다. 포도를 수확하고, 술을 빚고, 홍보하고, 판매하는 일과가 모두 끝난 뒤에도 술 이야기는 끊이지 않는다. 가족 모두가 모여 와인이나 맥주, 전통주 등을 곁들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이곳의 일상이다.


시나브로 청수 화이트.

“시나브로 와이너리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양조장입니다. 국내 와이너리들이 레드 와인 양조에 매달릴 때 한국 최초로 청포도 품종인 ‘청수’로 화이트 와인을 만들었죠. 한 외국 와인 전문가는 청수를 ‘한국의 소비뇽 블랑’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육종한 품종이기에 한식과 궁합도 매우 좋습니다. 샤르도네 위주의 화이트 와인만 접해본 외국인에게는 색다른 매력을 어필한다는 점에서 세계 무대에서의 경쟁력도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을 대표하는 와인은 ‘시나브로 청수 화이트’. 이근용 대표는 한국이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한 독일과 기후 조건이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해 화이트 와인 양조에 집중했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품종인 ‘캠벨 얼리’는 양조용으로 사용하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고, 농촌진흥청에서 육종한 ‘청수’로 화이트 와인을 양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산도와 당도의 밸런스가 좋고, 시트러스 향과 열대과일 향, 꽃 향이 풍부한 ‘시나브로 청수 화이트’가 이곳의 시그니처 와인이 됐다. 이 와인은 농림부 주관 우리술품평회 최우수상, 대전 아시아와인트로피 골드메달을 5회 수상하는 등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독일 베를린 와인 트로피에서 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피에스 샤인 스파클링 / 사진=서정준 객원 기자

시나브로 와이너리는 현재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끝없이 다음 스텝을 고민하고 있다. 그 결과, 올해 주류박람회에서는 새로운 라인인 ‘p.s와인’을 선보이기도 했다. 뜻밖의 기쁨(Pleasant Surprise), 추신(PostScript), ‘시나브로 그 다음(Post Sinabro)’의 의미가 담겨 있는 이번 라인업은 화이트 스파클링, 로제 스파클링, 샤인 스파클링, 애플 시드르 4종으로 구성됐다. 샤인머스캣, 영동 사과, 국산 포도 품종 나르샤와 청수, 모스카토 등을 사용해 새콤달콤하면서도 톡 쏘는 맛을 낸 것이 특징이다. 우표 모양의 레이블에는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젊은 감성으로 고객에게 다가가기 위해, 디자인을 비롯한 모든 브랜딩 과정을 시나브로 와이너리 2세대인 이병욱 씨와 박영광 씨가 담당했다.


시나브로 나르샤 로제 스위트.

현재 시나브로 와이너리의 생산 규모는 연간 약 20톤 수준. 1년에 2만병가량의 와인이 생산된다. 소규모 와이너리이다 보니 초기에는 생산량이 많지 않아 편의점이나 대형마트 입점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다. 양조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제품 홍보와 판로 개척에는 어려움이 컸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들이 합심해 어려움을 극복했다. 이근용 대표가 양조한 와인이 국내외 품평회에서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고, 이성옥 대표는 농협 하나로마트 등에 제품을 입점시켰다. 이병욱·박영광 씨 부부는 SNS를 통해 젊은 소비자층에 어필하고, 여러 점포 및 바틀샵에서 시나브로 와인을 만나볼 수 있도록 입점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



국내 와이너리 최초로 HACCP 인증을 받고, 국내외 권위 있는 주류 시상식에서 이름을 올린 시나브로 와이너리. 이근용 대표는 한국뿐 아니라 외국인의 입맛까지 사로잡은 비결에 대해 “한국 와인 업계 종사자들의 고민과 노력이 조금씩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라 답했다. 품질 개선 시도가 10년 넘게 이어져 왔고, 청수와 같은 신품종 개발이나 특허를 받은 국산 효모의 사용, 시설 개선 및 판로 개척 등 전방위적인 노력이 현재 한국 와인의 위상을 이룩했다는 것. 그의 답변에서 한국 와인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유럽의 구세계 와인, 미국과 호주 등지의 신세계 와인이 양분하고 있는 세계 와인 시장에 진출해 한국 와인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싶다는 시나브로 와이너리. 와인 전문점과 대형마트에서 ‘KOREA WINE’이란 카테고리를 만날 수 있기를, 그곳에서 시나브로 와이너리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사진=시나브로 와이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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